[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완력 자랑만 하는 경제처방

입력 2020-12-22 17:46   수정 2020-12-23 00:28

병(病)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줄기차게 들으면 원인 진단 시늉이라도 하는 게 순리다. 집권 3년 반을 넘겼으니 ‘우리가 틀렸나’ ‘무엇이 문제였나’란 생각을 품어볼 때도 됐다. 예를 들어,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처럼 정권 초기 의욕 있게 추진한 정책들이 경제체력 약화와 경쟁력 저하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으로만 그런 사실을 확인해도 자성과 방향 수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이 힘과 수단을 가진 집권세력의 의무다. 하기야 이것도 상당한 용기와 도량(度量)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책 실패 自認 없다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 정책이 ‘포용적 성장’에 이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을 통한 ‘공정경제’로 그 중심점이 이동했다. 지난 6월엔 문 대통령이 ‘보다 평등한 경제’를 강조하고 나서 그 진의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내부 검증을 거친 방향 수정의 모습은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부는 고집스럽게 버틴다. 한 번도 정책 실패를 자인해본 적이 없다. 소주성도, 공정경제도,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세입자를 위한다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취지와 달리 전세난 심화와 전세시장 대혼란을 불러왔는데도 흔들림이 없다. 2001년 임대료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처음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 도입 때도 진통이 적지 않았으나 결국 시장에 안착했다고 항변한다. 경제정책의 효과란 게 한두 해 갖고 평가할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급하게 꺼내든 보완책도 ‘완력 자랑’ 일색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로 인한 병세(病勢)를 가리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영끌 매수’가 각종 대출규제를 피해 신용대출 이상 급증을 불러오자, 정부는 바로 신용대출을 죄었다. 이 때문에 불과 서너 달 사이에 대출금리가 50bp(100bp=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화들짝 놀란 여당 대표는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자영업자 등에 대한 ‘대출금리 인하’ 압력을 가했다. 정책적 처방이 아닌, 손쉬운 완력 행사에 기댄 것이다.
'고장난 市場' 만들 텐가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적용 유예 요구는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이번엔 관대한 신용평가가 필요하다며 금융회사들을 압박한다. 은행의 배임죄 우려에도 아랑곳 없다. 급증한 보유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대통령까지 나섰다. 임차인(자영업자)이 임대료 부담을 다 짊어지는 게 공정한 일인지 묻고, 임대료 직접 개입 의지를 내비치기까지 했다.

최근 내놓은 ‘건설임대 세제혜택’ 방침에선 ‘국민 갈라치기’까지 더해졌다. 임대사업자를 투기꾼으로 몰아 각종 세제 혜택을 취소하더니, 전·월세 매물 감소가 심각해지자 이번엔 펀드 투자가 가능한 민간의 건설임대에는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수익을 혼자 갖는 임대사업자는 ‘악(惡)’이지만, 리츠와 공모펀드 투자자에게 수익이 배분되는 건설임대는 ‘선(善)’이라는 인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처방은 대개 이런 식이다. 병을 줘놓고 검증과 반성은커녕 힘으로 틀어막는 억지 처방전만 낸다. 경제정책이 정치행위가 돼버리니, 관치금융을 넘어 ‘정치금융’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질서자유주의의 태두 발터 오이켄은 “경제정책은 안정된 질서를 형성해야 하며, 시장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고 했다. 완력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해선 성장과 분배 모두 요원해진다는 사실을 정부·여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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